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얘기입니다만 다 알지 못하는 내용도 있어서 새삼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신라말 고승이셨던 무착 대사가 세웠다는 상원사가 있는 산은 꿩에 얽힌 이야기로 인해 꿩 치(雉) 자를 써서 치악산이라고 한다더군요. 어느날 스님은 산길에서 큰 구렁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감고 삼키려고 노리고 있는 것을 보고 활을 쏴서 그 구렁이를 죽였습니다. 살생은 하였으나 무고한 생명들을 구해 준 것이지요. 꿩은 몇 번이나 스님을 향해 울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깊은 산 속에서 땅거미는 지고 날은 저물어서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는데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에 찾아가서 주인을 부르니 하얗게 소복한 아리따운 여인이 맞이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니 여인은 스님을 방안으로 들게 하고는 바깥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에 밥상을 차려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내려 놓은 밥상에는 젓가락 한 짝만이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스님은 아무 소리 없이 손으로 공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여인이 “정히 그렇다면” 하면서 “나는 당신이 오늘 죽인 구렁이의 아내인데 원수를 갚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면서 구렁이로 변하여 몸을 칭칭 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일 자정 안에 저 산 꼭대기에 있는 종을 세 번 울릴 수 있다면 죽은 남편이 승천할 것이므로 스님을 풀어 주고 나도 따라 가겠으니 나마저 거두어 주시고, 만약 종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정히 그렇다면’ 했습니다. 젓가락 한 짝만 놓은 것과 아무 소리없이 손으로 집어 먹은 것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정히 그렇다면’ 했겠습니까? 묘한 것은 그 스님은 ‘왜 젓가락이 한 짝이냐, 수저를 달라’는 등의 소리 없이 그저 공양을 하셨단 말입니다. 더욱이 그 밤에 높은 곳에 있는 종을 어떻게 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순간 땡 땡 땡 하고 세 번의 종소리가 연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그 암구렁이는 기뻐하며 자기 몸을 풀면서 구렁이 몸을 벗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먼동이 트기 시작하자 종루에 가 보니 꿩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으로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은 구렁이와 꿩과 새끼 셋을 구덩이를 파고 묻으려고 하는데 웬 스님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새끼를 살리기 위해 생명 셋을 다 죽이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일 수 있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서천의 돌이 동쪽에 꽃을 피웠네. ”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스님은 “아하! 요리 맛이 탕 맛이 이렇게 좋을 줄 난 미처 몰랐네” 하면서 껄껄 웃고 돌아서서 가거든요.
어때요. 멋있지 않습니까. 젓가락 한 짝 놓았는데도 손으로 먹었고, ‘생명을 죽인 것도 자비가 될 수 있느냐’는 말에 ‘서천의 돌이 동쪽에 꽃을 피웠네’ 하니까 ‘탕맛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하면서 무릎을 치고 껄껄 웃으면서 돌아가더라니 얼마나 멋진 광경입니까. 이와 같이 깊은 도리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팔만대장경을 바로 꿰고 외로 꿴다 할지라도 글자만 알면 충전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굴리질 못하기 때문에 이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말 떨어지면 입 떨어지고 몸도 떨어지니 공덕이 안되는 거지요. 달마대사가 말씀하셨듯이 하나도 공덕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