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世)

(40世)

(44世)

(45世)

(46世)

 

신(愼)

공검(公儉)

응(凝)

훈(纁)

       효조(孝祖)-----<⑤참판공파>

 

(문양공파)

(암곡공파)

(증옥천파)

       계조(繼祖)-----<⑥옥천군파>

 

 

 

 

       영조(榮祖)-----<⑦군수공파>

 

 

 

 

       순조(順祖)-----<⑧삼지당공파>

 

 

 

       위(緯)-----------------------<③대사성공파>

 

 

 

       집(緝)-----------------------<④진사공파>

 

 

       풍(馮) -----------------------------------<②참의공파>

 

   인검(仁儉) ----------------------------------------------<①문숙공파>

 

※ 일러두기

ㆍ우리 설씨는 8파(派)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족보를 편집할 때 편의상 분류한 명칭일 뿐이지 따로 선조가 다른 것은 아니다.

ㆍ씨족사회에서 파(派)라는 것은 혈통계보를 뚜렷이 하려는 것이다. 파벌(派閥)의 뜻은 아니다.

ㆍ한 시조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계통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파(派)의 이름은 지명과 인물의 호(號) 시호(諡號) 또는 관직(官職)에 연유하기도 한다.

 

39세(世) 신(愼) 선조의 두 아드님인 40세(世) 공검(公儉) 인검(仁儉) 형제분이 처음으로 문양공파(文良公派)와 ①문숙공파(文肅公派)로 나뉘어졌고, 그 뒤 문양공파(文良公派)는 44세(世)인 응(凝) 풍(馮)형제분이 암곡공파(巖谷公派)와 ②참의공파(參議公派)로 나뉘어졌다. 암곡공파(巖谷公派)는 45세(世) 훈(燻)위(緯) 집(緝) 3형제분이 증옥천군파(贈玉川君派) ③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④진사공파(進士公派)로 나뉘어지고 증옥천군파(贈玉川君派)는 46세(世)효조(孝祖) 계조(繼祖) 영조(榮祖) 순조(順祖) 4형제분이 ⑤참판공파(參判公派) ⑥옥천군파(玉川君派) ⑦군수공파(郡守公派) ⑧삼지당공파(三知堂公派)로 나뉘어 졌다. 옛날 족보에 나오는 문간공파(文簡公派)는 옥천군파(玉川君派)이고 목사공파(牧使公派)는 삼지당공파(三知堂公派)이다. ⑤참판공파는 후예가 없다.

 

 

① 문숙공파(文肅公派)


 

40세 설인검(仁儉)선조를 파조로 하여 처음으로 고려때에 분파했다. 선조께서는 고려 충렬왕때 지금의 합천부사와 사재시경(현 해양수산부장 관)의 벼슬을 지내시고 문하평장사(현 부총리)관직을 수행하시다 서거하 시니 나라에서 문숙(文肅)의 시호가 내려져 그 후손들을 문숙공파라 이 른다. 문숙공의 손자인 설현고(玄固)께서는 지금의 경주시장과 대통령비 서실장을 지내셨고 증손자 설사덕(師德)은 문화부 평리(장관급)에 등관 하셨으며 총 44인의 문무관을 배출하였다. 순창 풍산, 광산 칠곡, 나주 남평,경주 망덕, 대구시,경주 동방 등지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근현대 저명인사는 8대 대종회장을 역임한 금성직물 薛相一, 전 재경부 서기관과 담배인삼공사 사회이사를 지낸 薛均泰, 건축 설계사 薛永雄, 현 경주시청 사무관 薛良浩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② 참의공파(叅議公派)


 

44세 설 풍(馮)선조를 파조로 고려말기에 분파하였다. 선조께서는 고 려가 패망함에 경기도 죽산에 들어가 자정하고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을 때, 조선 태종이 두번이나 병조참의(현 국방부 국장급)벼슬을 내렸으나 거절하여 고려말 의절신에 등재되셨다. 벼슬은 사양했으나 국왕이 내린 병조참의의 벼슬이기에 관직명을 따서 참의공파라 한다. 공의 손자 설 맹손(孟孫)께서는 중종반정 이후 이 과의 옥사사건을 잘 처리한 공로로 정2품(장관급) 가정대부 안천군(安川君)에 봉작되고 총 208위의 문무 관직이 배출되었다. 중원 앙성, 영동 이원,전남 조도, 진도 인지리,창원 월백 남동,서산 근흥,대구 서괘, 용인 고당, 장성 신흥, 개성, 고양 송포 마두, 서울시, 청산 덕지, 상주 모서, 밀양 청학, 상하남, 삼랑진, 순창 양산, 구림, 대장, 발산 ,태촌, 연산, 임실 덕치, 순천 벌교, 전동, 함경 도 단천, 이원 등지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근현대 저명인사는 9대 대종회장을 역임한 재경 경북대 법대총동창회장 인 薛溶載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薛官成, 독립군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薛寬協, 의병항쟁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薛昌海, 3.1운동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薛灌洙, 독립운 동으로 옥고를 치루어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薛哲秀, 근대 개화사상 가이며 배일사상 선각자인 薛泰熙, 동아일보 부사장과 새한민보사장을 역임한 薛義植, 미군정청 초대고문관이며 여론국장을 지낸 薛貞植, 초대 참의원이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薛昌洙, 국립공원 관리공단 이사장 을 거쳐 대한여행사 회장인 薛國煥,대구 의성 등 8개소 지청장을 지낸 薛景鎭, 보령 서천군수와 온양시장을 지낸 薛一鎭, 대전고법 판사인 薛範植, 강원도 전남 농촌진흥원장을 지낸 薛權錫, 전 경기도의원 薛羲錫, 산업자원부 사무관 薛泳錄, 한국통신 상무이사 부이사관을 거쳐 서울종 친회장인 薛鎭石, 중앙대학 산업과대학장인 薛鳳植, 동덕여대영문학장인 薛順鳳, 전 육군준장 薛在連, 대한재벌의 창업주 薛卿東, 대한방직회장 薛元植, 대한전선회장 薛元亮, 대한제당회장 薛元鳳, 인간문화재 薛在天, 영화감독 薛泰鎬, sbs성우부장 薛永範, kbs전남특파원 薛慶完 등이 활약하고 있다.

 

③ 대사성공파(大司成派)


 

45세 설 위(緯)선조를 파조로 조선초기 분파하였다. 공께서는 조선 세종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우리 가문에 최초로 조선조에서 문과급제자 로 국조문과방목에 기록되었다. 공의 관직이 성균관 대사성(현 대학총 장)이기에 관직명에따라 대사성파라 하였다. 장자 설갑인(甲仁)은 정3품 통예원 통찬(通禮院 通贊:현 1급 관리관)을 지냈으며 증손 설공찬(公瓚)은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은 한국 최초의 국문소설 설공찬전의 실 존 주인공으로 방송과 신문에 10여차레 보도되었으며 총 102위의 문무 관을 배출하였다. 순창 동전, 모정, 내동, 발산, 청도 마일, 의성 사미, 효성, 고흥 분천,경남 하동, 보령 독산, 충남 부여, 진안 월포, 순창 옥 천, 이곡, 전남 순천, 경남 진주, 고성, 거제 망치, 장성 수연, 정읍 회 룡, 옥구, 서산, 경남 통영, 곡성 오지, 담양 당현, 서천 두왕리 등지에 후손들이 산다.

 

근현대 저명인사는 초대 대종회장 薛準基, 2대 대종회장 薛琫洙, 3대 대종회장 薛鎭儆, 의병운동으로 대통령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薛鎭永, 전북 교육감과 국회의원을 지낸 薛仁洙, 전주 광주지방 검사장 과 대검공안부장을 지낸 薛東勳, 중소기업진흥공단 연수원장을 지낸 薛汶洙, 대전 한밭대 총장 薛東浩, 중앙대 대학원 이문대학장 薛重煥, 영남대 의무부 총장 薛正泫, 전 한일은행장 薛洪烈, 전 대전 서부경찰서장 薛柄善, 전 강남경찰서장 薛東柱, 전 단양 괴산경찰서장 薛東宇, 전 조흥은행 종각지점장과 아세아종금부사장 薛二柄, 전 조달청 경북 전남지청장 薛宰範, 전 충남도청 공보실장 薛榮濤, 안양가축연구소장 薛東攝, 전 충무시 의회의장 薛柱煥, 미도복장회장 薛寬儀씨 등이 활약하고 있다.

 

④ 진사공파(進士公派)


 

45세 설 집(緝)선조를 파조로 조선초에 분파하였다. 공께서는 세종조 에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은성군수의 관직을 지냈으나 군수공파라 하지 않고 진사공파라함은 조카 군수공과 겹쳐 반복돠가에 진사공파라 하였 다. 총 8위의 문무관을 배출하였으며 충남 대덕, 미동 와동 덕암 덕곡 등지에서 살고 있으며,

저명인사로는 전 천안역장 薛洪基, 초등교감 薛甲植 등이 있다.

 

⑤ 참판공파(參判公派)


 

46세 설효조(孝祖)선조를 파조로 분파하엿다. 공께서는 조선조 세종때 무과에 급제하여 제주목사(현 제주시장)와 공조참의 호조참판(현 재경부 차관)을 지내셨기에 관직명을 따서 참판공파라 한다. 장자 설 성(成)은 무과에 급제하여 좌익원종공신2등에 녹훈되고 담양부사를 지냈으며 총8 위의 문무관직을 배출하였으나 절손(折孫:후손이 끊어짐)되어 외손인 남 양 홍씨 문중에서 향사를 모시고 있다. 우리 설씨 대종가이므로 종가 복 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⑥ 옥천군파(玉川君派)


 

46세 설계조(繼祖)선조를 파조로 분파하였다. 참판공의 아우로서 조선 조 세종때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우도 도안무처치사와 병조판서(현 국방 부장관)에 오르시고 안평대군난을 평정한 공으로 정난공신 3등에 옥천 군(玉川君 :순창의 옛이름)에 봉작되어 옥천군파라 하였다. 장자 설 주 (柱)께서는 인피현령(현 전북 옥구군수)과 당상관인 동지중추부사를 역 임하였으며 차자 설 추(楸)는 성종조 상호군(정삼품)을 지내고 현손 설 우범(禹範)은 병마절도사(현 지방군사령관)로 임진왜란때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총 194위의 문무관을 배출하였다. 경기 시흥, 밀양 가산, 논산 화정, 경북 봉화, 충남 공주, 금산, 전북, 함열, 임피 , 평택, 안동, 주문진 향호리 ,고흥, 칠원, 장호원 ,고창 발 산, 여수 묘도, 경기 안성, 합천, 청송 현서, 금산 방우리, 경주 구황, 괘능, 무주 안성, 장성 방곡, 용인 고당, 고령 가곡, 장곡, 울산 온양, 대현, 의령 신반, 화곡, 초계 택리, 전북 김제, 영동 황간, 담양 회룡, 창녕 월명, 성주, 밀양 당두, 안태, 양남 하서, 임실 화성 등지에서 집 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근현대 저명 인사로는 5대 대종회장 薛元齋, 6대 대종회장 薛錫範, 11 대 대종회장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薛冀洙, 초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석우대종사 薛泰榮, 전 국회의원 薛枓厦, 부산광역시교육감 薛東根, 마산시 국민고충처리위원장 薛準洪, 통일원 부이사관 薛東根, 행·사 양과 합격하여 대전지법 판사 薛敏洙, 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薛世勳 ,사시합격으로 변호사 薛慶洙, 薛東根, 薛昌煥, 고시합격하여 동원증권 법무담당부장 薛光浩, 동아대학 사회과학원장 薛光石, 한국개발연구 원 조정실장 薛光彦, 전 부산지법 사무국장을 거쳐 영산대 부교수 薛泰雄 ,전 부산고등법원 형사과장 薛忠潤, 전 대구문화방송사장 薛漢俊, 전 경남신문 편집국장 겸 출판국장 薛基煥 , 중요 인간문화재 제55호 薛石鐵, 경남 거제에서 수질좋은 온천을 개발하여 계룡산온천을 운영하고 있 는 薛鎭甲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⑦ 군수공파(郡守公派)


 

46세 설영조(榮祖)선조를 파조로 분파하였다. 공은 옥천군의 아우로서 세종때 군수(태안군사-현 충남 서산군수)관직에 의하여 군수공파라 하 였다. 장자 설 장(長)은 참의 벼슬을 지내고 손 설남중(南仲)은 병마절 제우후(현 지방군사령관)을 지냈으며 총 19위의 문무관을 배출하고 순 창 모정, 고창 택동, 교촌 등지에 살고 있다.

 

근현대 저명인사는 전 강남구 삼성동장 薛聖洙, 고창여고 교장 薛泰鍾 등이 활동하고 잇다.

 

⑧ 삼지당공파(三知堂派)


 

46세 설순조(順祖)선조를 파조로 분파하였다. 공은 군수공의 아우로서 조선조 세종때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도총부 부사직(현 대령)때 좌익원종 공신(수양대군을 세조를 왕위에 옹립한 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나 물리 치고 30여년간 은둔생활을 하다가 성종의 부름을 받아 부산진첨절제사 와 김해부사 광주 상주 성주 황주목사(시장)를 역임하였다. 고향에서 은 둔생활을 하면서 당을 지어 삼지당(三知堂 : 知進-나아갈 줄 알고 知止-그칠 줄 알며 知足-만족할 줄을 안다 :三知)이라는 현판을 걸어 귀감 을 삼았기에 당호를 따서 삼지당파라하였다. 장자 설 진(珍)은 진사로 손 설 준(俊)은 창신교위 부사직을 지냈으며 총 46위의 문무관직을 배 출하였다. (옛 족보에는 목사공파라 했으나 1912년 임자보 때부터 삼지당파라 재편함)

 

근현대 저명인사는 10대 대종회장으로서 대한종합개발사장 薛東權, 중소기업청 기술국장, 행시10회 薛昌連, 국민운동 순창군지부장 薛相銖, 전 세계일보사장 선문대교수 薛勇洙, 전 대법원 서기관 인천지방등기소장 薛東勳, 전북대 행정실장 부이사관 薛東元, 설씨이천년사를 출간하고 대종사에 공훈하고 있는 薛明煥 등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