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법문
작성자 설정수
작성일 2011-10-04 (화) 11:34
ㆍ추천: 0  ㆍ조회: 626      
IP: 175.xxx.143
<신행담>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

 

모든 불교인들의 이상인 見性, 내면의 一心을 찾아가는 작은 신행담을 초등학교 어린이 수준의 작문으로 올려봅니다. 너그러이 봐 주십시요.

  <신행담>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에서-1                   {1}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믿고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겠구나.

고희의 나이를 넘어서면서 더욱 절실한 느낌이다.

부처님의 정각이야 말로 고해를 건너는 배가 아닌가. 이러하니 우리 불교인들에겐 마땅히 불. 법. 승, 삼보님이 믿고 의지할 곳이다.

그러하나 삼보님께선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부처의 성품을 갈무리하고 있다. 내면의 불성을 밝혀 너 자신을 의지 처 로 하라”는 것이 아닌가.

 

왕자의 신분도 헌 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생사가 없는 대 자유인의길 을 찾아 나선 고타마 싯다르타께서도 마음을 닦아 구경, 마음부처를 깨달으시고 고해중생으로 하여금 이고,득락의 길로 인도하신 자타일여의 실천공덕으로 대승의부처님이 되셨다고 하였다.

 

부처를 이루는 길이 어찌 쉬운 일인가.  고타마께서도 각고 6년의 처절한 수행 끝에 납일 밤 새벽 깊은 선정속에 우주와 인생의 연기이법을 발견하시고 드디어, 일체가 둘 아닌 한마음, 대원경지를 깨달으셨다고 하였다.

모든 것은 상의상관의 인과법칙으로 생멸,변화한다는 연기의 진리를 파악하시고 마침내 생사윤회하는 미혹중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사고해를 벗어나게 하는 바른 길, 실천적 중도(팔정도)를 깨달으셨다고 하였다.

 

모든 것은 덧없는 것. 무상함이 괴로움이다. 내 라고, 내 것이라고 내 세울 만한 고정된 실체가 없으니,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짓 나 이다. 그러나 이 거짓 나를 이끌고 가는 참 나, 주인공이 있다. 팔정도를 닦아 거짓 나에 대한 집착을 녹여 지혜롭고 자비로운 내가없는 나(無我)를 깨쳐라. 생사가 없는 나의부처님이다.

 

성도 이후 45년간 근본교설인 삼법인. 사성제. 12인연법을 바탕으로 팔만사천 방편설법으로 중도를 설하셨지만 그 핵심은 해맑은 마음하나 깨치는 것 이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대 긍정과 대 수용의 중도심이 부처님 마음자리이고, 중생의 마음세계에 새벽을 열어주신 해동의 보살, 신라 원효선사(617-686)님의 일심의 마음자리와 오늘의 시대, 바로 우리들 곁에 태양처럼 현전하신 대행선사님의 한마음 자리와 둘이 아니라 믿는다.                           

원효성사께선 말씀하셨다. “마음 밖에 실재하는 것은 없다. 일심은 근본마음자리 이다.

모든 사람의 깊숙한 내면에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일심의 원천이 흐르고 있다.

아무리 써도 조금도 줄어들지를 않고 써면 쓸수록 더욱 펑펑 솟아나는 동체 대비심을 발현하여 뭇 중생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歸 一心源 饒益衆生)“.

이른 바, 대승보살의 유훈 이었다.

“사나운 고해를 건너려거든 보살도(10바라밀도)를 닦아라. 보살의공덕 없이는 성불할 수 없다. 일심은 중생심의 고향이다. 말을잊고 찾노라면 고향은 아주 가까운곳에 있다.  

자기 내면에 일심이 있다 고 믿는, 그 信心의마음이 일심이다.“고 이르시고는,     (2)  천촌만락의 중생속으로 들어가시어 대자대비 행을 하셨다고 하였다.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재가 불자로서 40여년중 그 절반은 의타적인 불교. 학문불교에 안주해 온 참회였다. 알음알이 불교로써는 나를 찾아가는 머나먼 이 길에서 다리 뻗고 울어야 할 처지였다.

내 나이 50대 중반에 들면서 대행 큰스님과의 만남은 한철 여생에 구원의 빛 이었다.

 

“모든 사람의 근본마음자리는 불.조사님들의 마음자리와 똑같은 한마음 이다.

나를 있게 하였고, 살아가게 하고 있는 나의 주인이면서도 지극히 공한 마음자리가 바로 내 마음부처이다. 이름하여 주인공이다. 내 한마음의 주인공 안에는 제 불.보살님이 계시고, 부모조상님도 계시고, 팔부신장님도 계신다. 믿고! 바로 들어가라. 용도에 따라 믿고, 발원하면 신묘한 위신력으로 능공의 해결사가 되어주신다.“는 큰스님의 메시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상에서 바로 써 먹는 불교, 그 지름길로 인도하시는 한마음도량, 심성과학원에 귀명하게 됨은 내 불교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희망의 환희였다.

주인공 큰스님의 망극하신 은혜에 감사한마음을 어디다 비할 것 인가.

큰 스님의 한마음도리는 너무나 가까워서 쉽고도 어려운 자력문 이었다. 의타적인불교에 익숙해 온 불교인들에겐 법화경속의 장자의 아들마냥 놀랄 처지였다.

 

대행 큰스님의 법향이 흐르는 국내외 26개 지원 가운데 진주지원은 지중하신 스승님 은혜로 나의 선망 부모.조상님과 함께 내 가족들의 영원한 귀의처가 되고있다.

후손들에게 물려 줄 정신적 유산이기에 조부모로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 10년동안 우리 부부도반에게 초하루 보름법회와 함께 안거 수행은 미래를 발돋움하는 희망이었고 오늘을 살아가는 활력소가 되고있다.

특히 “나를 알고 가겠노라”는 아내, 원초 구도보살에겐 어린이들이 소풍 가는날 만큼이나 행복한날 들이었다. 자생중생들이 몸살장애를 부려도 주인공에게 밀어붙이고 가는 길 이었다. 가장 가까운 공부거리였나 하면 제일 가까운 도반이었고 지도교수가 되어온 아내의 행복을 싣고 다니는 이 사람도 내가 나를 찾아가는 觀心기사로서 더불어 행복했다. 40여년 생업일선에서 함께 고생해온 아내에 대한 내 작은 보상이기도 했다.   

어제는 2009년도 진주지원 하안거 해재아닌 해재 날 이었다.

그 동안 지원장 혜근스님께서는 “일체경계를 근본자리. 주인공에게 일임하는 것이 참선이다”는 큰스님의 안거법어를 조명해 주시며 죽비 삼성으로 자성내관의 문을 열어 주셨고 정진대중의 선정 열기는 산사의 고요와 하나를 이루어왔다.

지원장스님의 안거법문 가운데 “ 큰스님의법향이 흐르는 한마음도량은 우리들 마음의 부모님이 계시는 곳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스님의 법문은 항상 감동적 이었다.

중생심의 고향은 한마음이다. “바다와 파도가 둘이 아니 듯, 부모와 자식의만남이  (3)

한마음이다“,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이 길이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임을 증명 해 주신 것이었다. 우리 부부도반에게 진주도량은 마음의부모님과 함께 육친의 부모조상님이 계시는 마음의 고향이고 성지가 되고있다.

 

금년 하안거 일정은 매주 수,목,금, 3일 저녁 90분씩 3개월간 이었다.

산사, 진주 고향 길은 대중교통이 불편한 점 하나 아쉬움이었다.

하루 저녁 90분 정진을 위해 부산과 진주를 오고가는 3시간. 540리길을 오너로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하나 왕복 3시간. 540리길이 공허한 시공이 될 수 는 없었다

.스승님께선 “일체시 일체처를 도량으로 알고, 내 앉은자리가 선방임을 잊지 말라”는 깨우침을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나를 찾아가는 남해안고속도로는 또 하나의역동적인 참선도량이었다.

스승님의 법향이 흐르는 나의 승용차는 달리는 선방이었고 때로는 신바람 나는 염불당이 되고있다. 3인승 뒷좌석은 금년 들어서부터 고단한 아내의 침대가되고 있으니 6순 중반을 넘어선 할멈의 나이 탓인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스승께서는 “수행에 마장 없기를 바라지 말라”하셨지만 나를 찾아가는 이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동안거시즌엔 눈보라 속을, 금년처럼 장마철엔 폭우와 물보라 속을 뚫고 달리기 일 수였다. 특히 귀가길 야간운행은 마치 목숨을 건 자동차 경주장과 다를 바 아니었다. 더 큰 위협은 예고도 없이 눈앞을 가리우는 자생중생들의 졸음! 이었다. 일초도 허용될 수 없는 졸음운전으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치뤘다.

몇 년 전 늦은 밤 동안거 귀가 길에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스치고 살아났던 일. 그 다음해 동지법회 날 오후 귀가길 한낮에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스치고 좌측 앞뒤 타이어가 터져 버린 졸음운전 사고로 40여년 무사고 타이틀을 잃고 말았다. 이 두 번의 사고 때마다 당시 동승했던 세사람 모두가 무사했으니 “주인공 감사해”를 연발했다. 큰스님의 손오공이야기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붙들어 준 주인공의 자비로운 경책임을 믿고 감사했다.

“생사인연은 오직 주인공에 있다”는 믿음 하나로 안전운행을 관하고 다녔지만 신행력이 소극적인 탓으로 깊이 참회하였다.

 

졸음운전을 예방 할 묘법은 없을가?

“내 한마음이 관세음보살이다”,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두 번의 사고 이후부터 내면의 부처, 주인공의 위신력을 관하며 관심염불을 정근 해오고 있다.

20여년 전 법화도량에서 다년 간 수행해 왔던 관음정진, 타력신앙을 우려하시는 큰스님 문하에 들어오면서 덮어 두었던 이 여의주를 다시 활용하게 된 것이었다.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한마음주인공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일념 정근하면 망상은 사라지고 몸과 마음은 생기가 솟아나고, 고요하면서도 투명한 정신으로 운전을 하게되는 고로 피로와 졸음은 얼씬도 못하는 것이었다. 내면의 자생중생(업식)들이 공심으로 한마음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또한 염피관음력이 아니고 (4) 선정수행이 아닌가?

내가 나를 부르는 노래, 고요한 물 흐름과 같이 낭랑한 내 목소리는 관음의 묘음 이었다. 나에겐 그 어느 노래 보다 신나는 또 하나의 선법가 이다.

천태만상으로 질주하는 차량들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심. 공생해야 할 나의 소중한 도반들이며 스승으로 볼 수 있는 나의 안목도 염불공덕이 아닌가? 감사한일이었다.

참선공부가 정적인 수행 이라면 염불선은 동적인 수행으로서 또 하나의 방편보리라 믿고 싶다.

내면의 주인공을 믿고 관하는 관심염불은 언제 어디서 나 정진할 수 있어 좋다. 때와 장소에 따라 칭명염불이 아니면 마음으로 관하는 억념염불도 그 묘지력은 다를 바 없다. 등산이나 워킹을 할 때에도 관심염불은 언제나 나의 보디가드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영원한 나의님 이다.

 

마음의 부모님이 계시는 540리 고향 길이 이제는 멀지도 두렵지도 않다.

“내 하나를 버리면 걸림 없는 대 자유인이 된다”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들의 서원을 이루는 날 까지 관심기사로 봉직하기를 주인공에 일임할 뿐 이다.

 

오늘의 삶에 知足하고 삼보님과 부모조상님, 도반님들의 은혜와 일체의 은혜에 감사한마음으로 여생을 회향코자 주인공에 일임하면서 두 손 모읍니다.

 

2009년 하안거를 되돌아보며 진주지원 일여 회.  법곤  설 정 수 합장

 

  0
3500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오늘의 법문(살아서 죽는공부.죽어서 잘 사는 수행이 마음공부이.. 설정수 2011-09-22 763
오늘의 법문(나의 근본마음자리가 신묘한 나의부처, 믿고 의지하.. 설정수 2011-09-22 577
오늘의 법문 ( 고(苦)에서 벗어나는 길.) 설정수 2011-09-22 565
171 일반 불교의생사관과가벼운마음으로사는 길 법곤 2013-05-07 494
170 인생사 마음먹기나름이다. 법곤 2012-06-08 554
169 경계에 속지말라, 일체 경계가 나를 성숙.진화시키려는 부처님의.. 설정수 2011-10-04 604
168 <신행담>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 설정수 2011-10-04 626
167 대 자유인으로 사는 길 (대행선사) 설정수 2011-10-04 576
166 경계에 속지말라, 일체 경계가 나를 성숙.진화시키려는 부처님의.. 설정수 2011-09-22 558
165 <신행담>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 설정수 2011-09-22 625
164 대 자유인으로 사는 길 (대행선사) 설정수 2011-09-22 592
163 오늘의 법문(가정에 佛像을 모시는 일에 대한 법문)에 대한 小考.. 설정수 2011-09-22 608
162 오늘의 법문(가정에서 願佛(불상)을 모시고 향초를 피우는 일은 .. 설정수 2011-09-20 609
161 오늘의 법문(일상에서 바로 써먹는 주인공도리) 설정수 2011-09-20 533
160 오늘의 법문(일체의 은혜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설정수 2011-09-20 558
159 오늘의 법문(일체 제불.보살님과 부모.조상님은 다 내 한마음속에.. 설정수 2011-09-20 628
12345678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