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후(휘 총聰)선조와『화왕계(花王戒)』화왕 이야기
홍유후(휘 총聰)선조와『화왕계(花王戒)』화왕 이야기
※『삼국사기』권 제45, 열전 제6 설총 조에 실려 있으며, 동문선』권52에 '풍왕서(諷王書)'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신라 신문왕(재위 681-691) 때의 일이라고 한다.
※총(19世 聰), 자 총지(聰智). 호 빙월당(氷月堂). 원효대사(18世 元曉大師)의 아들. 어머니는 요석궁 공주(瑤石宮公主). 신라 십현(十賢)의 한 사람. 한림(翰林)을 지냈고 주로 왕의 자문역을 맡아보았다. 유학(儒學)과 문학(文學)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서 일찍이 국학(國學)에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쳐 유학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가 창제한 중국 문자에 토를 다는 방법은 당시 중국 학문 섭취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두(吏讀) 문자를 집대성하였다.
《화왕계(花王戒)》를 지어 신문왕(神文王)을 충고한 일화가 있으며 고려현종13년,1022) 홍유후(弘儒侯)에 추봉되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경주의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제향 되었다.
본성이 총명하고 예민해 나면서부터 도술을 알았으며, 방언으로 9경(九經)을 읽어서 후학들을 가르쳤으니 지금까지도 배우는 이들이 그를 종주로 받들고 있다. 또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는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오늘날 남쪽 지방에 더러 설총이 지은 비명(碑銘)이 있지만 문자가 이지러지고 떨어져 읽을 수 없으니 종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화왕계(花王戒)』화왕 이야기>
신라 신문대왕 11년 임진년(692)여름 5월에 높고 밝은 집에 거처하였을 때 신문대왕이 설총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오늘 장마가 처음 개이고 향기로운 남풍이 약간 서늘하니, 비록 맛좋은 음식과 듣기 좋은 음악이 있다 해도 고아한 이야기와 유쾌한 해학으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만은 못하리라. 그대는 반드시 색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터이니 어디 한번 나를 위해 말해보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설총은 "알았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가 들은 것은 옛날에 화왕(花王)이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니 봄철이 되자 예쁘게 피어나 온갖 꽃을 뛰어넘어 홀로 빼어났습니다. 그러자 가깝고 먼데서 곱디곱고 아름다운 꽃의 정령들이 바삐 달려와 화왕을 알현하고자 하여 오로지 다른 이에게 뒤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이때 홀연히 붉은 얼굴과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미인 하나가 간들간들 오더니 얌전한 자태로 다가서서 말하기를 '저는 눈처럼 흰 물가의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마주보며, 봄비에 목욕하여 때를 씻어내고, 맑은 바람을 쏘이면서 스스로 노닐거니와 이름은 장미라 합니다. 대왕의 밝은 덕망을 들었는지라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받들고자 하오니 왕께서는 저를 받아 주실는지요.'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장부 하나가 베옷에 가죽 띠를 매고 백발에다 지팡이를 짚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구부정하게 와서 말하기를 '저는 서울 바깥 큰길가에 자리 잡아, 아래로는 넓고 먼 아득한 광야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 빛에 의지해 살거니와 이름은 백두옹(白頭翁할미꽃)이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비록 좌우에서 받들어 올리는 것들이 넉넉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하며 의복이 장롱 속에 쟁여 있다 하더라도, 모름지기 좋은 약으로는 원기를 북돋워 주고 독한 침으로는 병독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이르기를, 실과 마로 짠 베가 있다 해도 거적이나 띠풀 같은 물건을 버리지 않나니, 무릇 모든 군자들은 인재가 부족할 때 대신 쓰이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왕께서도 역시 이러한 생각이 있으신지요.'라고 했습니다.
이때 어떤 이가 '두 사람이 왔으니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버릴 것입니까'라고 묻자, 화왕은 '장부의 말도 도리가 있지만 미인은 얻기 어려운 것이니 이 일을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부가 나와 말하기를 '저는 왕께서 총명하여 이치를 알리라고 생각해서 왔던 것인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닙니다. 무릇 임금 된 사람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 이가 드무나니, 이 때문에 맹가(孟軻)가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은 낮은 벼슬에 잠기어 흰머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러했거늘 전들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니, 화왕이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했다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왕이 얼굴빛을 바르게 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우화에 실로 깊은 뜻이 있도다. 글로 써서 왕 된 이들의 경계로 삼아야겠다." 하고는, 마침내 설총을 발탁하여 높은 관직에 임명하였다.
<화왕: 모란꽃의 별칭,
<풍당: 한나라 사람인데 국방대책에 좋은 말을 하였지만 관직에 좀처럼 승진 되지 않았다.>
<올바른 작품 감상>
이 작품의 올바른 감상을 위해서는 '장미'와 '할미꽃'으로 형상화된 인물의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장인물의 상징적 의미는 이 이야기가 신문왕으로 하여금 왕의 도리와 처신을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할미꽃'은 충언을 아끼지 않는 충신을, '장미'는 듣기에 좋은 말만을 아뢰는 간신을 상징한다.
꽃에 빗대어 임금의 처신을 말한 우언적(寓言的)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화(寓話)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학에서는 설총의 '화왕계'가 창작 우화로는 처음이라 할 수 있으나 소설이라 할 수는 없다. 우화소설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조선 후기이며, '장끼전', '토끼전', '서동지전(鼠同知傳)'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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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