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에 따라서 여러분들 몸 속에는 과거에 살면서 지은 대로, 묶어 놓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입력이 되어서, 여러분들은 그걸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고. 집. 멸. 도 사성제를 설하실 때 ‘고’ 성제를 먼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악으로 이끌 수도 있고 선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고정됨이 없이,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이든 지켜 볼 수 있고 실험할 수 있고 바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배인과 같습니다.   그래서 본래자성불이라고 합니다. 본래자성불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그 힘을 가하니, 맷돌에 물건만 넣으면 갈아져 나오고 또 서로 맞물려서 잘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비유컨대 여러분들도 그러한 맷돌과 같습니다. 중쇠를 꽂지 않은 맷돌은 서로 어긋나서 물건이 갈아 나오지 않는 것과 같이, 여러분들도 심봉을 잡지 아니하면 사는 데 배고프고 춥고 복잡한 여러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파탄 직전에 놓이기까지 하는 등 살기가 극히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해놓으셨어도 지금 시대의 여러분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해도 여러분들이 직접 먹어보지 못하고 그 맛을 모른다면 아무 쓸모없는 음식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하는데, 실은 꼭 부처님 법이라고 이름 지을 것도 없습니다. 부처님 나시기 이전에도 진리는 존재했으니까요.   부처님은 진리를 탐구하고 깨달아서 평생을 두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시면서 법을 전하셨습니다. 여러분들 몸 속에는 십일억이라는 생명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많은 생명들의 불성이 하나인가 많은가 할 때 하나도 아니요, 많은 것도 아니요, 늘이면 수없이 되고 줄이면 하나도 없으며, 또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꼬집어 이것이다 할 수 없으니 바로 공했다고 한 것입니다.   가끔 여러분들은 “아휴, 참 세월은 무상해”하시죠. 그런데 무상하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상이란 어떤 뜻입니까? 무상하다는 건 허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고정됨이 없이 찰나찰나 돌아가기 때문에’ 어떤 것’ 할 때 나라고 할 수 없으니, ‘나’라는 아상만 빼 던져 버린다면 악도 선도 없고 자연히 올바르게 계율도 지키고 선정에 들어 물리가 터져서 다른 모두와 둘이 아닌 도리를 그대로 여여하게 해 나갈 것입니다.   다만 물질은 생겼다가 변하여 부서지고 썩어서 나중에는 없어져 버리니 무상하다 할 밖에요. 물질이란 모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무상이라고 한 것이지, 우리들이 살아나가는데 허무해서 한탄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우주 삼라 대천세계의 근본은 인간 마음의 근본이요, 일체 만가지 생활의 근본은 인간의 마음에 가설이 되어 있다. 그러니 저 태양은 만물 만생을 소생시키는가 하면 산하대지는 만물 만생을 길러낸다. 천지가 둘이 아니 것이죠. 자식을 낳아 기르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둘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깊은 물 돌고 돌아 수증 되어 오르고 내리면서 만물 만생과 더불어 산천초목도 두루 적신다 저 둥근 달은 우리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밝게 비추어 주니 스스로 여여하고 스스로 그대로 실상인 것을   조금 전에 여러분들 몸 속에는 인연으로 인해 많은 생명들이 있다고 했는데, 악으로 나오고 선으로 나오는 것을 마음으로 다스리면서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잘 되면 감사하게 놓고 잘 안될 때는‘안되는 것도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니 되게 하는 것도 거기서 할 수 있다’하고 다시 맡겨 놓을 수 있는 마음으로 정진하셔야 합니다.   ... 1990년 11월 18일 법문 중에서 < 회보 38호 >